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방황하기
무엇을 하는 것이 맞는가. 이것을 하는 것이 맞는가, 저것을 하는 것이 맞는가. 사실 생각해 보면 맞다 틀리다의 개념은 맞을 때도 있고, 또 틀릴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도 이것을 두고 우리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마음의 장난인 것이 틀림없다. 무엇을 하는 것이 맞는가. 마치 길 잃은 강아지인 양 이 길도 가 보고, 저 길도 가 보지만 정작 내가 즐거움과 환희를 느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를 일이다. 무언가 특정한 ‘것’이어야만 하는지, 아니면 어떤 ‘순간’인 것인지. 이것이어도 되고, 저것이어도 되겠지 싶지만, 답을 찾아내려다가 그만 생각 속에 파묻히고 만다.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어 원래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고 말 지경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어려서 부터는 유치원과 학교에서, 성인이 되고 나서는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언젠가 특정한 사회에 속하지 않은 스스로를 발견할 때, 자신은 과연 누구인지 알아챌 수가 없다. 스스로가 낯설기만 하다. 직업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정의하다가, 그것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나’를 잃어버린다.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사회 속에서 소속감과 연대감이 깊어지면 그 관계 속에서 우리는 ‘특별한’ 사람이고 싶어진다. 인정받고 싶고 보상받기를 원한다. 건강한 정도의 동기부여라면 괜찮지만 정도가 과해지면 이기심으로 이어진다. 당연한 듯 받아들여질 지 모르지만 분명히 우리에게 독이 된다. 만약 타인들을 감동시켜야 할 아무런 이유나 의무가 없다면, 특별해 져야 할 이유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항 종류의 꽃이 존재한다. 꽃들은 누가 누구에게 뒤지지 않고자 노력이라도 하는 듯 모두가 하나같이 아름답다. 하지만 이들이 아름다운 진정한 이유는 노력없이 발휘되는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 때문인 것이지 않을까. 그들은 자신의 특별함을 뽐내려 하지도 않고 무슨 보상을 받기 위해서 아름다우려 하지도 않는다. 우리도 만약, 타인앞에 인정받고 당당해 지기 위해서 기를 쓰고 노력하여 특별해 지려고 하기 보다, 그저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스스로가 만족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보상받기 위한 노력으로 얻은 특별함보다 훨씬 더 화려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도 볼 수 있는 눈이 자라나지 않을까. 무엇을 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고민은 어쩌면, 자꾸만 내가 나를 평가하려는 습관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과, 해서 남의 눈에 더 잘 보일만한 것, 이 둘 사이의 갈등인 것이다. 고민에 대한 답은 내가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여부에 달린 것이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정직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럴 수 없다면 남의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한, 그러나 스스로에게는 정직할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결국에는 용기의 문제이다. (2014년 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