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마음의 그릇이 얼마나 차 있었는지 층에 층을 더하는 음식을 쌓아놓듯 꽉 차 있다. 더이상 쌓을 공간이 없을 만큼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을 그간 까맣게 잊고 있었나 보다. 하나를 덜어내면 또 다른 하나가 보이고, 또 하나를 덜어내면 또 다른 하나가 보이고… 이유없이 머리로만 바쁜 탓일 게다.
쌓인 먼지를 털어내듯 조금씩 그릇을 비워 본다. 비워낼 수록 그릇은 가벼워 지고 점점 바닥에 가까워 진다. 마침내 그릇의 바닥이 보이고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릴 때에 그 본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음의 짐과 정신적 부담이 조금씩 사라지는 이 순간, 이전의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살아왔는지 다시금 뒤돌아보게 된다.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며 ‘그때는 왜 그랬을까’하는 생각, 미래의 일들을 예측하고 계산하며 ‘이렇게 해야지’하는 생각 등, 망상에 가깝다 싶은 생각들로만 가득했던 나날들은 지금 이 순간 까마득히 잊혀진 채 무심히 사라지고 있었다.
꿈과 희망을 가지고 다시 디뎠던 땅은 너무나도 딱딱하고 마른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것은 너무나도 낯설었다. 마치 정신이 분열되기라도 한 것 처럼 나도 내가 누구인지를 모른채 살아가도록 만들었다. 도대채 숨은 쉬고 사는지, 잠잠했던 바다에 커다란 태풍이 들어 집채만한 파도에 휩쓸린 작은 돛단배와 같은 나날들을 보냈던 것만 같다.
항상 가득 차 있는 그릇마냥, 마음도 무겁고 갈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 무엇부터 집어야 할 지 우왕좌왕했던 시간들. 쫓기고 눈치보며 살았던 시간들은 마치 나를 시험하는 듯 가슴을 짓눌렀다. 미소 가득한 얼굴에다 ‘저 사람은 뭔일이 있기에 저렇게 밝게 웃는걸까’하는 듯한 표정으로 차가운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의 시선. 이 모든 것들은 고독함만을 가져다 줄 뿐이었다. 그런 생활이 이어질 수록 늘 머릿속을 내치는 질문은 ‘인류는 과연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였다.
신비로 가득한 이 우주에 존재하는 인류가 이렇게 서로에게 차갑게 대하며 살아가는 것이 괜찮은 걸까? 숲속에서는 온갖 종의 나무와 식물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데 인류에게는 과연 조화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지구상에서 가장 지능이 높은 생명체인 인류. 우리는 그 지능을 한껏 발휘하며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삶은 잘 닦여진 고속도로를 타듯 편안하고 무난하지만은 않다. 살아가면서 난관을 만났다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 어떤 외부적 요소들이 서로 충돌한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충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의지와 외부적 요소들을 절충하여 저항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는 대신에, 자신의 의지를 고집하여 끝까지 밀고나가는 경우가 많다. 밀면 밀 수록 충돌은 더욱 거세지기만 한다. 결과는 둘 중 하나이다. 모든 것이 망가지거나 다른 중요한 무언가를 희생하면서까지 ‘성취’ 하는 것. 전자를 선택하든, 후자를 선택하든 그것은 자신에게 달린 일이다. 결과 또한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돈’에 대한 숭배는 개인의 의지와 외적 요소들이 늘 충돌하게 만든다. 어떻게든 더 많은 돈을 벌고 저축하기 위해 우리는 안간힘을 쓴다. 높은 임금의 직업을 얻기 위해서 유치원 시절부터 교육열은 시작된다.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교육을 받은 우리의 아이들은 성장해서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하려 하지만 세상에는 넘쳐나는 고급인력들로 비집고 들어갈 만한 틈을 주지 않는다. 이런 식의 삶이 꽤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양측의 힘이 커질수록 저항력은 강해진다. 부를 얻으려는 의지는 커져만 가고 현실은 그것을 실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 지고만 있다. 이 충돌은 그 세기가 더욱더 막강해 진다. 문을 잠근 자물쇠는 점점 더 조이고 우리는 그 문을 열기 위해 밀고 있다. 문은 결국 부서지고 말 것이고 우리는 다치게 될지도 모른다.
성공에는 한 가지 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성공이란 단어의 의미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성취한 삶도 성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행복이란 무엇인지 먼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자신에게 행복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행복은 단순히 기분좋은 경험만을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일 수 있다. 행복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고난(충돌)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태어나 인생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을 기회로 여기는 것, 고난 앞에서 겸손해 질 수 있는 힘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해서 느껴지는 기쁨은 행복이면서 동시에 삶의 가장 원시적인 원리일 수도 있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행복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았을 때, 우리는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태어나고 자란 나라를 떠나 홀로 걷는 삶을 살다, 다시 돌아갔던 그곳은,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댓가를 치뤄야 하는지를 똑똑히 가르쳐 주었다. 이런 저런 생각들로 가득 채워진 마음의 그릇을 결국에는 반드시 비워내어야만 했던 것이다. 욕심과 혼란,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했던 그릇은 반드시 다시 비워져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정직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몸의 안락함은 주었거니와, 마음으로는 뭔지 모를 불편함을 주었던 그곳에서 나는 다시 용기를 가져야 했다. 행복해 질 용기를 다시 찾아야만 했다. 행복은 어쩌면, 나약해 지면 얻을 수 없는 무언가 일지도 모른다. 행복이란 얻고자 하는 갈망과 배고픔이 없이는 쉽게 오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행복해 지고자 하는 의지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저항과 충돌 속에서 더욱 견고해 져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항과 충돌을 만나면서 우리는, 살아가는 이 삶, 한 숨, 한 숨 쉬며 살아가는 이 순간들이 얼마나 값지고 가치있는 것인지 깨닫게 될 지도 모른다. 한 발, 한 발 움직일 때 마다 부딪힘의 연속이었던 그 땅에서의 생활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릇이 비워지듯 마음의 매듭도 풀리고 그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하나 하나 되짚으며 건져낸다. 그 안에는 계속되는 충돌로 생겨난 고름들로 가득했고 아직까지도 계속 짜내고 있다. 천천히 다 걸러내어 완전히 비워질 때까지 기다릴 참이다. 빈 그릇 하나만 달랑 남는 그 순간, 내 앞에 놓여진 현실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이야말로 진실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