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유 (逍遙遊)는,

고전 [장자]의 첫 번째 편 제목입니다. 뜻을 그대로 옮겨보자면, 자유롭게 한가로이 노니는 것을 말합니다. 겉으로만 보이는 물질적인 가치만을 추구하다가는 진정한 세상의 경지를 결코 경험할 수 없다는 장자님 철학의 핵심을 담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장자]에서 장자님는 진정한 인간됨의 가치란 세상일을 해결하기 위한 지혜나 기술을 연마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한가롭게 노닐며 여유로이 즐기는 삶에 있다고 강조하십니다.

지난 10년여간 써 온 글들을 온라인 공간을 빌려 이렇게나마 공유하고자 감히 블로그를 열어봅니다. 지난 20여년 간 타국생활을 하며 만난 이야기들을 정리해 보고픈 마음에서 입니다. 장자님의 가르침은 철학의 정수에 해당될 만큼 깊고 넓은 뜻을 가집니다. 감히 자유로이 한가롭게 노니는 삶을 실천해 보고자 하는 소망으로 여러분들과 이렇게 글을 공유합니다.

-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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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에게

똥파리가 되어 방황하다

부쩍 날씨가 더워지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 점심식사후 축 쳐진 머릿속은 똥파리 날아다니듯 이런 저런 생각들로 멤돌고 있다. 배가 불러 속이 더부룩 하고 높은 온도에 뜨거운 바람까지 부니 뇌가 익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뭔가 글귀가 떠오르거나 쓰고 싶은 주제가 생각이 날 때면 재워두었다가 나중에 써야지 써야지 하고만 생각하다 어느새 그 생각은 사라져 버리고 멍하니 잡생각들이 그 자릴 메우곤 한다. 뭔가를 써야지 하며 생각만 하다가 재워둔 생각들은 하찮은 잡생각 찌꺼기의 분비물인 마냥 서서히 사라지고 만다. 꽤나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지만 최근들어 일기 쓰듯 써 내려가는 글을 통해 나도 몰랐던 나의 생각과 그 동안 얻었던 교훈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국을 떠나 모험하는 삶을 살아온 지난 8년 동안 참으로 다양한 경험을 했고 이 경험들은 피부로 맞닿아 부딪혀 보고 쪽박나듯 깨져봐야 만이 참된 성장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가르쳐 주었다.

 

대학교 강의를 들으며 배웠던 지식들은 유용하긴 했지만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한 듯 했다. 시련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하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무런 이론적 체계를 내놓지 못했다. 나무 한 그루가 자라는 데에는 교과서적인 방법론이 존재할 수 없듯 인간의 삶 또한 크게 다름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 나무가 목이 마르면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뿌리를 내리듯, 삶 또한 나에게 필요한 경험이 무엇인지 알아서 그곳으로 나를 인도했다.

 

꽤 오랫동안을 방황아닌 방황을 했나보다. 아니 지금도 방황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한국땅을 다시 밟았을때는 반가움이나 안도감보다는 혼란스러움과 어색함으로 항상 마음과 정신이 불편했다. 그 안에 서 있는 나는 과연 누구인지 스스로가 낯설었다.

 

우리는 보통 어떤 집단에 속한다고 느낄 때 안정감을 가진다. 익숙함을 통해서 마음은 편안해지고 말과 행동도 자연스러워 진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이 소속감은 사라지고 없었다. 태어난 나라에서 소속감을 느끼기 보다는 몸과 마음이 편안히 숨쉴 수 있는 자연에서 그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내가 있을 곳은 어디인가’라는 불확신과 불편함은 계속해서 나를 방황하게 했다. 자꾸만 편안함과 안락함을 찾고자 애썼다. 이때문에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갔다. 이 와중에 정처없이 떠돌듯 여행인지 방황인지를 하면서 나도 모르는 또 다른 ‘나’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자꾸만 어딘가에 ‘속할’ 곳을 찾아다니기 보다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낯선 땅에 아무것도 모른채 여행하고 방황했던 지난 날 동안에도 ‘나’라는 사람은 늘 그곳에 있었다. 나는 이미 속해 있었다. 이 세상에 이미 속해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들더니, 어디선가 불쑥 살아갈 힘이 솟아났고 한 숨 한 숨 들이쉬고 내쉬는 공기 마저 고맙게 느껴졌다. 하루를 소중히 여길만한 겸손함도 얻었다. 산들바람이 정처없이 불고 지나가듯 마음도 정처없이 흔들리는지라 늘 이런 마음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지만,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했다.

(2014년 1월 31일)

2012년 독일 베를린 장벽 앞에서